나라현·나라시
나라의 불빛을 산 위에서 기다리다 9월, 해 질 무렵 와카쿠사산으로 떠나는 짧은 드라이브
나라 시내를 걷다 보면 지금 걷는 길을 산 위에서 내려다보고 싶어져. 와카쿠사산에 가려면 신와카쿠사야마 코스를 달려 정상 주차장까지 간 다음, 거기서 300m 산책로를 걸어 전망대로 가면 돼. 낮에 보이는 지붕도 석양도 시내 불빛도, 올 때마다 눈길이 가는 곳이 달랐어. 언제 올지 여행 전부터 고민하는 것도 즐거워.
벚꽃길 드라이브 뒤에 만나는 낮 풍경, 여름 산 너머로 지는 해, 초가을 시내의 불빛, 겨울엔 멀리 보이는 산까지. 마음 가는 계절을 골라 나랑 와카쿠사산에 가 보자.
봄4월·벚꽃이 필 무렵인 14시쯤
벚꽃길을 달린 뒤, 낮의 나라를 내려다보다
아직 어두울 때 아리아케에서 출발해 빨간 오픈카를 타고 고속도로를 쭉 서쪽으로 달렸어. 4월 간사이 2박 여행의 첫날은 벚꽃 핀 신와카쿠사야마 코스를 달리고 산 위에서 나라 시내를 내려다보는 게 목표였어. 정상에는 가게가 없다고 들어서 먼저 나라시 시모고몬초의 쓰루야 도쿠만에서 겐조 미카사를 사뒀어.
신와카쿠사야마 코스에 들어서자 도로 양옆으로 벚꽃이 보이기 시작했어. 꽃 아래를 스쳐 온 바람이 지붕을 연 차 안으로 밀려들었어. 위를 보고 싶었지만 꾹 참고, 핸들을 잡은 채 앞을 보며 커브 너머로 나아갔지. 편도 3.7km를 달려 승용차 약 50대를 주차할 수 있는 정상 주차장에 도착하면, 이제부터는 걸어가야 해.
전망대로 이어지는 300m 산책로를 걸어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는 곳에 도착했어. 얇은 겉옷을 팔에 걸치고 한쪽 발을 살짝 앞으로 내민 채 멈춰 섰어. 바람이 민트색 니트 어깨를 스치자 한 손을 가슴께에 얹었어. 눈앞에는 나무들 너머로 나라 시내가 펼쳐져 있었어. 낮에는 지붕과 길이 보여서 나도 모르게 하나씩 눈으로 따라가게 돼.
가까운 나무에서 시내로, 시내에서 먼 산으로 시선을 옮겨 갔어. 중간에 보이는 커다란 지붕도 이 풍경 속에서는 시내의 일부야. 아래에 있을 땐 건물을 올려다봤는데, 지금은 그 너머 산까지 보고 있어. 이렇게 넓었구나, 하고 나도 모르게 작게 말했어.
전망대 잔디는 봄 햇살을 받아 포근했어. 바람이 불 때마다 팔에 걸친 겉옷 자락이 흔들렸어. 입을 정도로 춥지는 않았지만, 가져오길 잘했다 싶을 만큼 딱 좋은 봄 오후였어.
와카쿠사산은 삿갓 3개를 포개 놓은 듯한 모습 때문에 미카사산이라고도 불린대. 차에 두고 온 미카사도 이 산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과자야. 과자와 산 이름이 이렇게 이어질 줄은 몰랐어. 삿갓 3개가 포개진 모습을 보려고 발밑 비탈을 둘러보다가, 내가 이미 그 산 위에 서 있으니 겹친 모습을 볼 수 없다는 걸 깨달았어.
풍경을 보며 아까 달려온 벚꽃길이 산 어디쯤을 지났는지 찾아봤어. 나무에 가려 도로 자체는 보이지 않았지만, 커브 너머로 꽃이 보였을 때의 기분은 또렷이 기억해. 아래에서 올려다본 벚꽃과 위에서 내려다본 시내. 오늘은 그 둘을 한꺼번에 즐길 수 있었어.
봄 하늘은 살짝 뿌옇고 먼 산의 윤곽도 부드럽게 보였어. 또렷한 풍경도 좋지만, 이렇게 부드러운 풍경도 봄다워서 좋아. 난간 앞에서 사진을 한 장 찍어 함께 달리는 친구에게 “벚꽃길을 지나 만난 이 탁 트인 풍경”이라고 보냈어.
주차장으로 돌아가는 길에 친구한테 “미카사산에서 미카사 먹었어?”라는 메시지가 왔어. 아직 안 먹었다고 답하고 미카사 봉지는 열지 않은 채 조수석에 두었어. 오늘 밤 숙소에서 차와 함께 먹을 생각에 기대가 됐어. 핸들을 다시 잡고 벚꽃이 핀 내리막길로 들어섰어.
여름7~8월·해 지기 전 저녁
산 능선으로 기우는 석양과 시내의 윤곽을 함께 바라보다
야경으로 유명한 와카쿠사산을 밤이 되기 전에 찾아가 보기로 했어. 여름 간사이 3박 여행 셋째 날의 목표는 정면에 보이는 이코마산 너머로 지는 석양이었어. 석양을 보려면 해 지기 30분쯤 전부터 산 위에 있는 게 좋다고 읽어서 그 시간에 맞춰 신와카쿠사야마 코스로 향했어. 해가 완전히 기울기 전에 신와카쿠사야마 코스 끝에 있는 정상 주차장에 도착했어.
차에서 내려 300m 산책로를 걸어 전망대에 도착하니 아직 지붕과 시내 도로가 제법 잘 보였어. 불빛만 보이는 야경과 달리 나라 시내의 모양이 그대로 드러나. 석양을 보러 왔는데도 먼저 낮에 걸었던 길이 어디쯤인지 찾고 있더라. 다시 하늘로 시선을 돌리니 해가 산줄기에 가까워지고 있었어.
정상에는 가게가 없지만 자판기에서 음료는 살 수 있어. 걸어 올라오니 목이 말라서 차가운 음료를 하나 사서 한 모금 마신 뒤 난간 쪽으로 향했어.
낮게 비치는 햇살이 눈부셔 한 손으로 이마에 그늘을 드리웠어. 다른 손은 카고 미니스커트 옆으로 내린 채 산 바로 위의 해를 바라봤지. 검은 운동화 아래로는 정상의 잔디, 난간 너머로는 나무와 시내가 보여. 이곳에 서서 풍경이 바뀌기를 기다리는 것도 즐겁네.
산줄기를 바라보다가 다시 시내로 눈길을 내렸어. 방금 전까지 보이던 건물 윤곽 위로 저녁 그림자가 점점 드리워졌어. 그림자가 시내 어디부터 뻗어 가는지 앞쪽 나무부터 차례로 살펴봤더니, 산에 가까운 쪽 지붕부터 먼저 어두워지는 게 보였어.
해가 산 바로 위에 다다르자 빛이 한결 부드러워지고 이코마산 능선이 선명하게 떠올랐어. 해가 능선에 걸리는 순간, 이마에 댔던 손을 내리고 휴대전화로 딱 한 장만 찍었어. 능선에 걸린 뒤 시야에서 사라지기까지는 생각보다 훨씬 빨랐어. 마지막에는 손가락 너비만 한 빛이 스르르 산 너머로 사라졌지. 땀 맺힌 목덜미에 산바람이 스치는 느낌이 참 시원했어.
해가 산 너머로 사라진 뒤에도 산 위 하늘은 한동안 밝았어. 시내 쪽에는 첫 불빛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어. 야경까지 기다릴까 망설였지만, 오늘은 석양을 보는 날로 정했으니 여기서 돌아가기로 했어.
하늘이 아직 밝을 때 300m 산책로를 따라 주차장으로 돌아왔어. 차에 타기 전에 사진 한 장과 함께 “이코마산 너머로 지는 순간을 끝까지 봤어”라는 짧은 메시지를 적어 함께 달리는 친구에게 보냈어.
시동을 걸었더니 친구가 “다음엔 야경까지 기다려 줘”라고 답했어. 야경은 다음 여행의 즐거움으로 남겨뒀어. 전조등을 켜기 전에 나무 사이로 첫 불빛 몇 개가 더 늘어난 게 보였어.
가을9월·해 지기 전부터 밤까지
시내 불빛이 늘어날 때까지 난간 곁에서 한숨 돌리기
낮에는 나라 시내를 걷고, 저녁부터는 와카쿠사산에서 불빛이 늘어나는 걸 기다리기로 했어. 9월 간사이 2박 여행의 첫날, 아리아케에서 빨간 오픈카를 타고 나라까지 달려온 뒤 그날 계획대로 움직였어. 시내에서 미리 사둔 미카사를 차에 싣고 신와카쿠사야마 코스로 향했지. 산길에 들어서자 커브가 이어져 핸들을 돌리는 횟수가 갑자기 늘었어. 편도 3.7km, 나무에 둘러싸여 달리다 보니 시내를 걸으며 느꼈던 활기가 조금씩 멀어졌어.
정상 주차장에 도착해 차에서 내려 전망대로 향했어. 하늘이 아직 밝을 때 300m 경사로를 걷기 시작했지. 운동화 밑창으로 길의 감촉이 전해지고, 바로 곁에서는 풀 냄새가 났어. 돌아갈 땐 어두워지겠지만 산책로에는 밤이면 발밑 조명이 켜진다고 해.
난간 앞에 서자 나라 분지가 눈앞에 펼쳐졌어. 먼 산줄기가 어두워질수록 시내 불빛이 하나씩 눈에 들어왔어. 크림색 겉옷 앞에 두 손을 포갠 채 처음 불이 켜진 곳을 눈에 담아뒀어. 그곳을 기준으로 불빛이 늘어나는 순서를 따라가 보려고.
해가 막 진 직후라 산줄기 위 하늘에만 아직 밝은 기운이 남아 있었어. 그 아래 시내는 벌써 그림자 속에 잠겨 있었어. 저녁에 올라와서야 볼 수 있는, 낮도 밤도 아닌 짧은 순간이야.
신와카쿠사야마 자동차도로 안내에는 해가 진 뒤 30분에서 1시간쯤이 야경을 즐기기에 가장 좋다고 적혀 있었어. 와카쿠사산 야경은 신일본 3대 야경 가운데 하나로도 선정됐다고 해. 처음 켜진 불빛을 기준으로 삼았는데, 그 주변에 2개, 3개씩 불빛이 늘어났어. 하나씩 따라가다 포기할 즈음엔 처음 기준으로 삼았던 불빛을 알아볼 수 없게 됐어.
밤 시내의 불빛 사이로 곧게 뻗은 빛줄기가 몇 개 보였어. 차량 불빛이 이어지는 걸까? 낮에 걸었던 길도 그중 하나로 이어질지 모른다고 생각하니 내려다보는 시내가 갑자기 친근하게 느껴졌어.
시선을 낮추자 나무 사이로 커다란 지붕이 보였어. 와카쿠사산에서는 도다이지와 고후쿠지가 있는 시내를 내려다볼 수 있으니, 낮에 걸었던 길을 떠올리며 바라보는 것도 즐거워. 아까 내가 어느 모퉁이를 돌았더라, 하고 찾아보다 보니 어느새 하늘은 완전히 어두워졌어.
함께 달리는 친구에게 보낼 사진 한 장을 고르려고 찍은 사진들을 비교해 봤어. 불빛이 적을 때 찍은 한 장과 완전히 밤이 된 뒤의 한 장. 고민 끝에 처음 불빛이 켜진 곳이 아직 보이는, 조금 이른 쪽 사진을 보냈어.
주차장으로 돌아가는 300m 구간은 발밑 조명이 비춰 줬어. 뒤돌아볼 때마다 시내 불빛이 아까보다 늘어 있었어. 몇 번이고 걸음을 멈추다 보니 주차장까지 가는 길이 좀처럼 끝나지 않는 것 같았어.
주차장으로 돌아와 미리 사둔 미카사 포장을 열었어. 폭신한 빵과 팥소를 산 위의 밤공기 속에서 다 먹고 포장지를 작게 접었지. 돌아가는 길에 들을 곡을 고른 뒤 전조등을 켜고 두 손으로 핸들을 잡아, 커브가 이어지는 길을 따라 시내 쪽으로 내려갔어.
겨울1~2월·눈 없는 맑은 날 13시쯤
목도리를 여미고 먼 산까지 눈길을 보내다
겨울 간사이 3박 여행 셋째 날이었어. 1~2월다운 매서운 추위였지만, 눈 없는 맑은 낮이었어. 이번 겨울 여행은 아리아케에서 빨간 사륜구동 세단을 타고 왔어. 공기가 맑은 겨울이면 시내 너머의 산까지 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와카쿠사산으로 향했어. 신와카쿠사야마 코스를 달려 정상 주차장에 도착했지. 그늘진 커브에 들어설 때마다 찬 공기가 밀려들어와 히터를 1단 더 높였어.
정상은 시내보다 조금 춥다고 들었는데, 차에서 내리자마자 뺨이 얼얼할 만큼 차가워서 그 말이 바로 실감 났어. 서둘러 코트 단추를 맨 위까지 채웠어.
코트를 입은 채 300m 산책로를 걸었어. 전망대에 도착하니 발밑 잔디 너머로 낮은 난간이 있고, 그 너머에 나라 시내가 펼쳐져 있었어. 눈 없는 맑은 오후를 골라 오길 정말 잘했어.
겨울 잔디는 키가 낮아서 걸을 때 신발 밑에서 바스락 소리가 났어. 여름 해 질 무렵 밟았던 부드러운 잔디와는 감촉이 전혀 달라서 난간 앞까지 일부러 소리를 내며 한 걸음씩 걸어 봤어.
바람이 느껴져 목도리 끝을 한 손으로 턱 가까이 끌어당겼어. 다른 손은 코트 주머니에 넣고 고개를 시내와 산 쪽으로 돌렸지. 야경을 기다렸을 때와는 달리 눈길이 훨씬 먼 곳까지 뻗어 나가더라.
먼저 나무가 있는 비탈을 보고, 다음은 시내 지붕, 그 너머 산줄기로 시선을 옮겼어. 공기가 맑은 겨울 풍경은 가까운 곳부터 먼 곳까지 차례로 바라보는 게 좋아. 산줄기가 몇 겹인지 세어 보려 했는데 3번째부터는 윤곽이 흐릿해져서 어디서 나눠야 할지 헷갈렸어.
난간 옆에서 심호흡하자 찬 공기가 코 안쪽까지 찡하게 파고들었어. 여름 해 질 무렵에 왔을 땐 이렇게 먼 데까지 보이지 않았던 것 같아. 겨울 공기는 맑아서 먼 산의 윤곽까지 선명하게 보이는구나.
정상에 있는 우구이스즈카 고분은 전체 길이 103m의 전방후원분이야. “마쿠라노소시”에 나오는 “꾀꼬리의 능”이라고도 불린다고 해. 천 년도 더 된 책에 기록됐을지도 모를 곳에 지금 내가 서 있다고 생각하니, 잔디밭을 걷는 발걸음이 저절로 조용해졌어.
주차장으로 돌아와 차 안에서 히터를 켜고 잠시 쉬었어. 차가웠던 손끝이 풀리는 동안 아까 찍은 산줄기 사진을 다시 봤어. 화면으로 보니 3번째 산부터는 하늘과 거의 구분이 안 돼. 그래도 보내고 싶어서 함께 달리는 친구에게 “겨울 낮 풍경도 좋아”라고 덧붙여 보냈어.
돌아가는 길엔 핸들을 다시 잡고 커브를 하나씩 내려갔어. 산을 다 내려와 시내로 들어서니 아까 위에서 바라본 지붕들 사이를 달리고 있다는 게 조금 신기했어. 숙소에 도착해 오늘 찍은 사진을 다시 보고, 산줄기가 3번째 산까지 또렷하게 보이는 한 장에만 즐겨찾기 표시를 해뒀어.
이야기 부분은 해당 명소에서 영감을 얻은 허구입니다. 정확한 정보는 공식 관광 사이트나 정보 사이트에서 확인해 주시기 바랍니다.
여행에서 맛보고 싶은 지역 먹거리
와카쿠사산 모양의 미카사
나라시 시모고몬초의 쓰루야 도쿠만에서는 와카쿠사산을 본떠 만든 겐조 미카사를 맛볼 수 있어요. 시내에서 미리 사 두면 산에서 내려온 뒤 달콤한 간식으로 즐기기 좋아요.
볼거리
정상에서 펼쳐지는 나라 분지
해발 342m인 와카쿠사산에서는 옛 수도의 시가지와 먼 산까지 내려다볼 수 있어요. 야경은 신일본 3대 야경 가운데 하나로 선정됐어요. 저는 사진을 찍기 전에 가까운 나무부터 먼 산까지 차례로 눈으로 따라가 봤어요.
도로와 도보 구간
신와카쿠사야마 요금소에서 정상 주차장까지
- 신와카쿠사야마 코스 편도 거리
- 3.7km
- 와카쿠사산 해발 고도
- 342m
신와카쿠사야마 요금소에서 정상 주차장까지 편도 3.7km예요. 주차장에서 전망대까지는 300m 걸어가요.
342m는 와카쿠사산의 해발 고도예요. 드라이브웨이는 같은 요금소로 돌아오는 왕복 코스로 총 7.4km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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